온누리
“100번 정도는 배낭을 꾸려야 산꾼의 도가 트인다.” 신앙생활이든 일상생활이든 ‘채움’보다 중요한 것이 ‘비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까운 산을 오르기 위해 배낭을 꾸리면서도 돌아와 짐을 내려놓으면 요긴하게 쓰지 않는 물건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은 ‘비움’보다 ‘채움’에 연연한 모습을 발견하며 깜짝 놀란다. 영원한 것과 구별되는 덧없음, 그 덧없음에 집착하는 모습에 놀라는 것이다.
▼산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바로 그 자리에 묵묵히 솟아있다. 산을 오르면 첫 30분이 가장 힘들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몸과 마음이 홀로 일어서 걷기에 더욱 그렇다. 그동안 1등과 양적 성장만이 최선인 줄 알고 달려왔던 그 중독증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손으로 바위에 기대어 헉헉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정상을 향해 힘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믿었던 오만과 모든 역할이 떨어져 나간다. 모든 것이 비워지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모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산을 담을 공간이 주어진다. 속고 속이는 세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이기면 그만이다. 이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각색 병으로 고통 받는 자, 귀신 들린 자, 중풍병자와 모든 약한 것을 고쳤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무리를 보신 예수님은 이들이 보내는 환호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이들을 뒤로하고 묵묵히 산을 오르셨다. ‘비움’보다는 ‘채움’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치열한 삶의 세계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기에 예수님은 그 귀한 생명의 말씀인 ‘산상수훈’을 무리를 피해 산에서 가르치셨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삶의 원리를 깨닫게 한다. 정말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복되게 살기 위해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할 귀한 가르침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10). 아멘. / jsc@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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