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에 반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내가 남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남편을 변화시키겠다’, ‘아내를 변화시키겠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며 여기에 매달린다. 한평생 여기에 집착하다가 허망한 죽음을 맞는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요, 우둔한 사람이다.

 

▼ 문제는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고 주위환경을 보며 남을 탓하는 것이다. 온전한 변화는 예수를 만날 때 시작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예수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신분의 변화가 이뤄진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신분이 바뀐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신분이 바뀌면 가치관이 바뀐다. 인생이 변화된다. 예수를 믿으니 심령이 새롭게 되어(엡 4:23)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한다(롬12:2).

 

 ▼ 예수를 믿음으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 지혜로운 사람들이 드리는 간증이다. ‘문제는 바로 내가 바뀌지 않음에 있음을…’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고백한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아멘./ jsc@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