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나무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인생은 희망이 없다. 부활을 생각하지 않고 이 세상의 삶만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욥의 고백이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욥 14:7~13).

 

▼ 이 세상의 삶만 바라보는 인생을 사도 바울은 ‘곤곤한 인생’이라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곤고함으로부터 구원을 갈망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욥 역시 ‘참 희망의 근원’을 알고 있기에 울부짖는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욥 14:13).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생각하지 않는 인생에게 삶의 전부는 ‘먹고 마시자’ 뿐이다. 목숨걸고 열심히 산다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 15:32).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는 주 만군의 여호와의 명령에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한다(사 22:12,13). ‘이 세상이 전부’임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부귀와 향락을 위해 마음과 온 몸을 던진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 손에 잡히는 것에 소망을 둔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 믿기 때문에 나무보다 못한 인생을 산다.

 

▼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사망 권세 아래 있는 나에게 산 소망이 되신 예수님, 그래서 그 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부활의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먹고 마시는 일‘에 매달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 속 깊은 고요한 울림으로 깊이 묵상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9). 아멘.      / jsc@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