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성숙한 신앙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 어디서나 주님 안에서 기뻐한다. 일어서서도 앉아서도 넘어져서도 기뻐한다. 성공이나 실패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복음이 있기에 그저 기뻐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가 하는 일에는 기쁨이 넘친다.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7:55). 심지어는 스데반처럼 순교까지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 ‘주 안에서 기뻐할 것’을 권면하는 바울은 기뻐하기 위해 먼저 버릴 것을 가르친다.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5).
자랑스런 조국, 혈통 좋은 집안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다. 당대의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확실한 생의 목표와 야망이 있었다. 넉넉하게 한 세상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췄다. 그런데 바울은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오히려 해(害)와 배설물로 여기겠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배설물로 여김은....”(빌3:7,8).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참 기쁨을 위해 모두 버리겠다는 위대한 선언이다. 바울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때문이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빌3:8,9) 때문이었다.
▼ 참 기쁨을 누리며 범사에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그렇게나 집착하는 명예와 학식과 재물과 확실한 생의 목표를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는 일이다.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충만하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에서나 기쁨을 충만케 하시는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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