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신문사와 재정국 가족들이 남한산성을 올랐다. 북문에서 동장대 터를 향해 성곽 길을 걷는다. 남한산성의 운치를 잘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적송을 비롯해 소나무들이 볼 만하다. 완만한 산책길을 20여분 즐기자, 외벽 아래로 아찔한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오르막 가파른 계단길이다. 하지만 초겨울 경관이 좋아 산을 힘들어하는 자매들도 쉬엄쉬엄 잘도 오른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긴 울음을 토해낸다.

▼ 수북이 산길을 낙엽이 덮었다. 봄, 여름, 가을 내내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던 단풍조차도 조막손을 놓았다. 겨울 내음을 풍기면서 이리저리 뒹굴다 낙엽 밟는 연인들에게 계절의 밀어를 속삭인다. 동장대 터에서 다시 북문을 거쳐 북장대덕을 지나 서문으로 향한다. 지근에 수어장대가 있다. 인조 2년에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다. 수어장대 옆에 무망루가 있다. 무망루는 세자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이 그 치욕의 아픈 시간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수어장대 안쪽에 붙여 놓은 현판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7일간 저항을 한 곳이 남한산성이다. 사람이 쌓은 산성이 영예를 지켜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군은 10여만 대군을 이끌고 질풍노도처럼 조선을 점령하였다. 더 버티기 어려워진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송파의 한강변 삼전도에서 높은 단상에 앉아 있는 청태종에게 네 번 절하고 아홉 번 고개를 조아리며 항복을 했다. 얼음 바닥에 인조가 머리를 조아리는 사이 청태종은 오줌을 갈겼다고 한다.

▼ 평생 섬김과 청빈한 삶으로 일관해 오신 고 한경직 목사님, 영락교회를 물러나서는 남한산성 안에 있는 18평짜리 교회 사택에서 기거하다 삶을 마치셨다.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이나 예금통장 하나 없이 평생을 사셨다. 유품은 지팡이와 털모자, 옷가지 몇 점이 전부였지만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고 있는 목사님에게서 배우는 진리이다. ‘치욕의 산성’이 있는가하면 ‘영예의 산성’이 있음을… “여호와는 내 산성이시오 내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바위가 되셨습니다”(시94:22).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