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남쪽이 고향인 아낙네들이 모였다. 아마 초등학교 동창 모임인 것 같았다. “이 썩은 보리 뭉딩이야!” 참으로 거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그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인간적인 따듯함이 배여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정겨움이 넘쳐 난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고, 오히려 ‘너 정말 미워!’라는 한 마디에서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막1:32~34).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신 예수께서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뒤 당신이 하신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8:29).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제자들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할지 말 것’을 명하셨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는 자리에 더러운 귀신이 있었다. 예수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1:35)며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내셨다. 이때 그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회당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막1:24).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그 분을 거룩하신 분이라며 큰소리로 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
▼ 자기 언어가 있고 비운 언어가 있다. 예수님을 잘 안다고 말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능력과 사역을 자랑하고 자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자기 언어를 쏟아내고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비운 언어, 성령의 언어, 자기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들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입 다물 것’을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이 아닐까.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비결이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4). 아멘.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