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리차드 포스터는 저서 ‘기도’에서 단호하게 외친다. “기도는 우리를 지성소로 인도한다. 거기서 우리는 신앙의 가장 깊은 신비 앞에 꿇어 엎드려 경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깊은 신비’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먼 나라에서 살아왔다. 그 나라는 시끄러움과 분주함과 사람들의 아우성이 있으며, 좌절과 공포와 위협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본향으로 영접하신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일상’, ‘사역’, 심지어는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만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본향에는 평안과 기쁨이 있고, 다정함과 교제와 솔직함이 있으며, 친밀함과 용납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이 하나님의 마음, 곧 우리의 본향을 여는 열쇠가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하나님께 사랑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기도의 세 가지 움직임은 삼위일체적인 성격을 띤다. ‘안으로 향한 움직임’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가운데서 구세주와 교사로서 역사하시는 그 분의 사역에 부응한다. ‘위로 향한 움직임’은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으로 또한 능력 주시는 자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과 일치한다. ‘밖으로 향한 움직임’은 성령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안에 힘과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일치한다.

 

▼ “영적인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의 작은 산들과 골짜기에서 정기적으로 훈련받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의 이 말은 일상생활, 사역의 분주함으로 ‘기도’에 게으른 모습을 돌아보며 깊은 뉘우치게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기도에 힘써야 할 마지막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 역시 권면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