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100년 전, 1907년 1월 6일부터 10일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부흥사경회가 열렸다. 이 사경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형제들을 질시했으며 방위량(Blair) 선교사를 미워했다”고 자복하며 회개했다. 길 장로의 회개 앞에 다른 교인의 회개 대열이 줄을 이었다. 평양 대부흥운동은 도박, 축첩(蓄妾), 조혼, 음주, 흡연 등을 금하는 기독교 사회윤리관을 정립했으며, 이런 일련의 회개운동은 오늘날 유례없는 한국교회의 대부흥을 가져왔다.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 창전교회에서 열린 여러 교파들의 합동기도회에서 선교사 하디(Hardie)의 회개에서 시작되었다. 이방의 먼 낯선 나라, 한국에서의 전도가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한국인에 대한 백인으로서의 우월 의식, 즉 ‘양대인(洋大人) 의식’에 있었다는 회개였다. 선교사 하디가 이러 사실을 선포하며 회개하자 여러 선교사들이 통회자복하기 시작했으며, 원산에서 평양에서 회개의 봇물이 터졌다. “한국교회 부흥은 가슴 치는 회개로부터.”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 교파를 초월한 10만 여 명의 크리스천이 상암 월드컵경기장 안팎에 운집해 회개를 통한 부흥을 다짐했다.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는 죽은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고 성령을 부어 주옵소서. 한국교회를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옵소서.”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는 설교를 마치고 울먹이며 이렇게 기도했다. 모두들 회개의 열매가 없음을 자백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밝힐 것을 다짐했다. 100년 전 평양의 대부흥을 간구했다. ▼아직까지 한국에게는 가깝고도 먼 일본. 끊임없는 독도분쟁, 역사왜곡, 영해싸움… 그 질기고도 깊은 애증의 세월. 복음 빼고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래서 부요하지만 참으로 가난한 일본이 변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삿포로까지’, 러브소나타가 일본에 강하고 급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 러브소나타가 드디어 동경을 두드린다. 평양부흥 100주년을 맞아 일본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러브소나타를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아멘./ jsc@onnu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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