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하나님은 우리를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맹종하는 로봇으로 보지 않으신다. 우리를 참으로 고귀한 존재, ‘약속의 대상’으로 대하신다. 우리와 깊이 만나시고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무엇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깨우쳐 주는 ‘주기도’를 가르쳐 주기 전에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기도를 먼저 지적하셨다.
▼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다 받았느니라.”(마6:5).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떠들썩하게 기도하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도 문구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며 기도를 빌려 자신이 얼마나 경건하고 거룩한지를 내세웠다. 종교 활동에 열중했던 이들은 공개적으로 십일조를 드리고 금식을 하면서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녔다. 이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닌 오로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셨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깊은 교제, 그 자체가 상인데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자기 상을 이미 다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필립 그레이엄 라이켄(Philip Graham Ryken)의 말이다. “은밀한 기도에 따르는 상은 곧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누리는 복, 곧 기도 그 자체이다. 기도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한 요소가 아니라 가장 꾸밈없는 진수로 정제된 그리스도인의 삶 그 자체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은밀한 곳에서 교제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이 세상에서나 다음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 영적인 무관심,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보다는 외형적인 성취를 추구하며 외식적인 기도에 매달려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은밀하게 하는 기도’를 최상의 모범으로 보여 주셨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은밀한 만남과 깊은 대화’임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는 물러나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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