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숨겨진 분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섬겨야 할 참된 신이 누구인지를 몰라 하늘과 바다와 산을 향해 절을 한다. 사람이나 동물의 상을 만들어 복을 달라고 간구하며 나무 조각이나 돌 조각을 새겨서는 신이라고 섬긴다. 옛날에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를 많이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사람이 온전한 믿음으로 예배할 수 있는 신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 따라서 이방인들은 자력으로 구원의 길을 걷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절대적인 신이 사람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가 자신을 구원해야 된다. ‘자력구원론’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 사람을 구원하려면 유한한 사람과는 달리 그 신은 무한하여야 한다. 무한하다는 것은 ‘초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신다. 하나님은 어느 한 종족에 귀속되거나,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분이 아니시다. ‘하늘에 계신’ 분이다. 그래서 사람을 구원하고 우주만물을 고치신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이나 사람보다 작거나 그 크기 정도이신 분이라면 그분은 절대로 사람을 구원할 수도 이 우주만물을 고칠 수도 없다. ‘하늘에 계신’, 그 절대적인 분, 초월자이신 하나님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구속 역사 과정에서 자신을 구원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아버지로 알려 주셨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그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당신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고, 부활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사람과 우주만물로부터 초월하신 분이시지만 하늘 보좌에 홀로 앉아 계시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아빠가 되어주신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가운데 내재하시어 우리를 돌보시는 그 좋으신 아버지, 하지만 우리를 초월하여 ‘하늘에 계신’ 그 분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바라보는 것으로 ‘주기도’가 시작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