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눅15:11-32)이다.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분배받은 작은 아들이 아버지 집을 멀리 떠났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런운 것들로 가득 찬 집 밖의 세상이 너무 멋져 보였다. 젊음이 있고 나름대로 지식이 있기에 재산만 지니면 세상의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를 졸랐다. 아버지가 내 준 재물을 모아 먼 나라로 왔지만 집 밖은 자기가 꿈꿨던 ‘유토피아 세상’이 아니었다. 

 

 ▼ 재산과 젊음과 지식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산을 모두 탕진하였다. 흉년까지 들었다.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얹혀 겨우 살았다. 들에서 돼지를 치며 쥐엄 열매로 배를 채웠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쥐엄 열매마저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져있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은 희미한 불빛을 보았다. 굶주려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눈에 들어 온 희망의 불빛이었다. ‘아, 그래. 아버지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버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룩진 상처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돌아 온 둘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며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큰잔치를 벌렸다.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에 묘사되어 있는 이 분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때, 우리는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은혜 가운데 머물게 된다. 

 

▼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바로 그 분께서 아직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십자가로 얻은 그 값진 ‘구원’을 허랑방탕 모두 탕진하고 못쓰게 만들고 있는 나를 아직도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그 사실이 내가 살아야 삶의 목적이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참여해 가야 할 이유이지 않는가. 기도는 ‘그 아버지에게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주기도문은 가르쳐 주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