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온누리

기도는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대로 다 기도가 있다. 하지만 그 동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 기도의 동기는 주로 자신의 욕구의 충족,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남에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의 동기는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 신앙생활 가운데 일반적으로 느끼는 고충이 바로 기도에 관한 문제이다. ‘기도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언제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세례 요한도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제 선생님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예수의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은 기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시편에 나오는 그 수많은 주옥같은 기도를 외우고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을 때(대하 1:7) 참으로 겸손하게 지혜를 구함으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부귀와 권세까지 더해 주시도록 한 그 놀라운 솔로몬의 기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움직인 여호수아나 입다, 야베스의 기도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카디쉬(Kaddish)와 18번 축복 기도’, 즉 ‘세모네 에스레(Shemone Esre)’도 잘 알고 있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카디쉬와 같은 기도문들을 매일 두세 번씩 낭송하였다. 

 

▼ 기도를 많이 알았고, 아무리 오랜 시간 되풀이 기도하여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돌아오시는 예수님의 해같이 빛나는 얼굴에 묻어나는 평안과 기쁨, 그 놀라운 신비와 감동을 마음 속 깊이 체험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11:1). 아멘.

 

작성자  온누리